나는 죽어간다.
부고. 늦은 새벽, 휴대폰에 울리는 알림 소리. 잠결에 화면을 확인하다가 멈칫한다. 오랜 지인의 아버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이었다.
어느새 주변의 죽음에 무덤덤해졌다. 어린 시절에는 부고를 들을 때마다 낯설고 두려웠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점점 익숙해진다.
작년만 해도 다섯 번의 장례식에 다녀왔다.
어떤 분들은 10년, 20년, 많게는 30년 이상 알고 지낸 분들이었다. 사고로, 질병으로, 혹은 너무 지쳐서 떠나버린 사람들. 마치 차례를 기다렸다는 듯 한 명씩 사라져 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삶과 죽음이 맞닿아 있음을 피부로 느낄 때마다 묘한 기분이 든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우리는 죽어간다고들 한다. 하루하루가 생의 끝을 향해 가는 여정이라면, 결국 우리 모두는 조금씩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존재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기억이라는 게 참 이상하다. 오랜 시간 함께했던 사람인데도 얼굴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그들의 목소리, 표정, 웃음소리까지 분명 익숙했을 텐데, 막상 눈을 감고 떠올리려 하면 희미하기만 하다. 심지어 가족의 얼굴조차도 뚜렷하게 그려지지 않을 때가 있다. 하지만 함께한 시간과 추억은 오래 남는다. 아마도 우리는 얼굴보다 그 사람과의 기억을 더 소중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한때는 사진을 보면 기억이 또렷이 떠오를 거라 믿었다. 그러나 사진 속의 모습은 차갑게 정지되어 있을 뿐, 그 안에서 살아 숨 쉬던 감정까지 담아낼 수는 없었다. 결국, 기억을 온전히 살려내는 건 사진이 아니라 그들과 함께했던 시간들이었다. 우리는 눈앞의 얼굴보다 마음속에 새겨진 순간들을 더 오래 간직하는지도 모른다.
글을 쓰다 보니, 내가 무엇을 말하려 했는지조차 흐릿해진다. 처음엔 단순히 부고를 접한 감정을 기록하려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막상 한 줄씩 적다 보니, 글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조차 모르게 되었다. 그럼에도 이렇게 적고 나니 조금은 마음이 편안해진다. 어쩌면 글을 남긴다는 것 자체가 나만의 애도 방식일지도 모르겠다. 떠나간 이들의 얼굴이 떠오르지 않아도, 그들과 함께한 시간과 감정들은 이렇게 내 안에 남아 글이 된다.
2025년,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